모델 김동수는 한국 모델계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린다. 1980년대 해외 여행 자율화가 되지 않았던 시절, 우연한 기회로 미국에서 모델의 길을 걷게 된 김동수는 당시 서구 모델계에서 주목받는 아시아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국내 모델계의 세계화를 위해 앞장서며 한국 모델계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김동수는 미국 유학 시절, 길거리 캐스팅으로 모델의 세계에 입문하게 됐다. 당시 그에게 모델이란 개념은 낯설었지만, 대학 교수의 "모델 같다"는 말에 힘입어 모델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키가 크고 마른 동양인 모델이었던 김동수는 1980년대 서구 모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서양의 미에 대한 기준은 김동수에게 혼란을 주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평범하거나 심지어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었던 그는 서양에서는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으며 자신만의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를 보냈다.
유럽 각국의 런웨이를 누비며 활약하던 김동수는 한국의 가을 하늘이 그리워 귀국을 결심한다. 하지만 귀국 후 마주한 한국 모델계의 현실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한국 모델계는 작은 키에 우아한 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기에, 185cm의 키에 강렬한 눈빛을 가진 김동수의 스타일은 파격적이었다.
이에 김동수는 한국 모델계의 세계화를 위해 직접 나섰다. 그는 국내 최초로 해외에서 사용하던 모델 프로필 카드인 '컴포지트 카드'를 도입하는가 하면, 자신의 스타일대로 런웨이를 펼치며 한국 모델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런웨이 밖에서도 김동수의 행보는 눈부셨다. 그는 동덕여대 모델과 교수직을 맡아 국내 4년제 모델과를 최초로 설립했다. 또한 한국 모델학회 회장직을 맡아 한국 모델계의 역사를 기록하고 미래를 고민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김동수는 한국 모델계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최근 열린 '아시아 모델 페스티벌'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은 이제 아시아 모델 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또한 연기와 예능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모델들의 활동은 한국 모델의 역량과 매력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 강조했다.
평생을 모델과 한 길을 걸어온 김동수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내 일을 사랑하면서 역할을 찾아가는 모델이 되고 싶다"라며, "제자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그들이 나아갈 길을 만들어 주는 게 교수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모델학회 회장으로서 모델계의 시야를 넓히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첫 번째 펭귄'이 되어 한국 모델계의 새 길을 연 김동수. 런웨이 위에서 빛나는 워킹과 포즈로, 런웨이 밖에서는 열정과 노력으로 한국 모델계의 오늘을 만든 그녀의 앞날에 우리의 시선이 주목된다.
- 現 동덕여자대학교 모델과 학과장
- 1999년 동덕여자대학교 국내최초 모델과 설립
- 現 제 1대 한국모델학회 학회장
- 2012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
- 모델론·모델학·모델 시대를 말하다 등 다수의 모델 관련 저서